솔바람 소리는 비우라 비우라 하지 않고 조용히 품어주네… 충남 공주 마곡사(경향신문) > 언록속의 마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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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람 소리는 비우라 비우라 하지 않고 조용히 품어주네… 충남 공주 마곡사(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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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1-22 09:19 조회6,5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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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하늘 덮은 소나무 아래 백범의 글귀 벗삼아 쉬어가네
ㆍ사색의 길서 명상에 잠겨 하룻밤 묵어가면 어떠하리

유행을 따라 백범 김구 선생께도 ‘안녕’을 묻고 싶은 새해다. 독립운동을 ‘테러활동’이라 하는 역사교과서 탓에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고 계실지 모르겠다.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충남 공주 마곡사(麻谷寺)는 국모의 원수를 갚으려다 첫 번째 옥살이를 했던 청년 김구가 스물세 살의 겨울을 보냈던 곳이다. 신분을 속이고 숨어든 그를 품어주었던 겨울 산사는 여전히 포근하고 여유로웠다.

태화산 자락 마곡사에 도착한 건 해가 서쪽으로 한참 기울어버린 오후였다. 걸음을 재촉해 마곡사의 관문인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니, 극락교 너머 아기자기한 가람이 보였다. 극락교 아래로 마곡천이 사찰을 가로지르듯 흐르고 있었다. 절 치고는 참 희한한 구조다. 해탈문과 천왕문 왼편으로 영산전(보물 800호)과 수선사, 매화당 등 스님들의 수행공간이 있고, 대광보전(보물 802호)과 대웅보전(보물 801호)은 극락교 너머에 있다. 마곡천을 경계로 마치 현세와 극락이 나뉘는 듯한 모양새다. 알록달록 연등이 달린 다리를 건너는 순간, 정말 딴 세상으로의 경계를 넘는 듯한 묘한 설렘이 다가왔다.


마곡사 앞 고개를 올라선 때는 벌써 황혼이었다. (중략) 마곡사는 저녁 안개에 잠겨 있어서 풍진에 더럽힌 우리의 눈을 피하는 듯하였다. 뎅, 뎅, 인경이 울려왔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소리다. 일체 번뇌를 버리라 하는 것같이 들렸다. 이 서방이 다시 다져 물었다.

“김 형, 어찌하시려오? 세사를 다 잊고 나와 같이 중이 됩시다.” (중략)

우리는 안개를 헤치고 고개를 내려서 산문으로 한 걸음 한걸음 걸어들어갔다. 걸음마다 내 몸은 더러운 세계에서 깨끗한 세계로, 지옥에서 극락으로, 세간에서 출세간으로 옮아가는 것이었다.

-김구 <백범일지>

극락교를 지나 절 안마당에 들어서니, 라마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오층석탑(보물 799호)이 눈에 쏙 들어왔다. 그 뒤로 웅장한 대광보전과 화려한 이층 지붕을 이고 선 대웅보전이 올려다보였다. 마당 왼편으로는 한때 선생이 머물렀다는 백범당도 보였다. 공양주에게 다가가 ‘백범 명상길’이 어디냐 물었다. 마곡사 인근에는 선생이 자연을 벗삼아 사색을 하며 거닐었을 길을 재현한 ‘마곡사 솔바람길’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짧은 코스가 일명 ‘백범 명상길’이다.

백범당 뒤쪽으로 난 길을 통해 절을 나서자, 마곡천의 물소리가 귀를 가득 채웠다. 시원한 물소리에 마음부터 씻고 발걸음을 떼라는 듯, 징검다리 사이로 쉬지 않고 물이 흘렀다.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왼편으로 나무 데크처럼 만든 공간이 나왔다. 이름하여 ‘김구 선생 삭발터’라 한다.

얼마 후에 나는 놋칼을 든 사제 호덕삼을 따라서 냇가로 나아가 쭈그리고 앉았다. 덕삼은 삭발진언을 송알 송알 부르더니 머리가 선뜩하며 내 상투가 모래 위에 뚝 떨어졌다. 이미 결심을 한 일이건마는 머리카락과 함께 눈물이 떨어짐을 금할 수 없었다.

-김구 <백범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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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 전경.


선생은 “하룻밤 청정한 생활에 모든 세상 잡념이 식은 재와 같이 되었으므로” 출가를 작정했다지만, 말만큼 쉽게 잡념을 버리지는 못했을 법하다. 도망자의 신분으로 택한 구도의 길. 세상이 어지럽고 나라의 위기가 목전에 있는 때에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살아도 되는가를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삭발터 뒤로 마곡천 건너로 넘어오는 다리는 백범교라 부른다. 잠시 평탄한 마을길을 걷다 길이 어느 쪽인가 헤맬 무렵 템플스테이 체험객의 뒷모습이 보였다. 뒤로는 물소리, 앞으로는 새소리가 들려오는 명상길 초입 쉼터를 지나야 본격적인 언덕길이 나온다. 앞서 가주던 체험객이 슬그머니 돌아서 내려갔다. 붙잡고 싶은 마음을 놓고, 길을 재촉했다.

이제는 하늘로 곡선을 그리며 솟은 소나무들을 벗삼아 걷는다. 힘이 들만 하면 나오는 쉼터마다 백범이 남긴 글귀가 적혀 있다. 숲길 너머로 군왕이 나는 자리라는 ‘군왕대’를 만났다. 태화산 일대가 전란을 피하는 명당이라는데, 풍수지리를 잘 몰라도 범상치 않은 느낌이 나는 곳이다. 마곡사는 640년(백제 무왕 41년, 신라 선덕여왕 9년)께 당나라에서 돌아온 신라 승려가 좋은 터를 골라 지은 절이라 알려진다. 신라의 승려가 백제 땅에 세운 절이라니, 다소 의구심이 들어도 어쩔 수 없다. 마곡사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설이 분분하다 한다. 법문을 듣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이 “삼(麻)과 같이 무성”하여 마곡사라고 하였다고도 하고, 중국 마곡사를 따라 지은 이름이라거나, 주변에 마(麻)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청양 장곡사와 지금은 절터만 남은 예산 안곡사와 함께 삼곡사라고 부른 덕분이라는 설도 제법 그럴 듯하다.

내리막길이 시작되면, 금세 아늑한 절 안마당과 법당들이 굽어보인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려설수록, 대웅보전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다시 안마당으로 넘어가는 극락교 위. 마지막 남은 햇살에 물든 사찰이 어여쁘기 그지없다.

선생이 상투 대신 얻은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은 오래 쓰이지 못했다. 스승이 자신을 종처럼 부리는 일에 대해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월등한 양반이 되어서” 남들을 내려다보겠다는 마음이 있었음을 깨달았던 그다. “이러한 허영적인 야심은 불씨 문중에서는 터럭끝만치도 용서하지 못하는 악마”라고 스스로를 다잡기도 했다. 선생은 결국 남들을 내려다보기보다 모두와 함께 걷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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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이 잠시 은거한 마곡사 백범당.


다시 백범당 앞에 섰다. 선생이 1946년 다시 마곡사를 찾아와 심었다는 향나무가 보였다. 백범당 전면부 한가운데에는 당시 마을사람들과 함께 찍었다는 사진이 걸려 있다. 선생 뒤로 완장을 찬 좌익과 넥타이를 맨 우익이 나란히 보인다. 선생의 친필 휘호가 가슴을 쳤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밟고 갈 적에
어지러이 걸어선 아니되겠지
오늘 내가 걸었던 길을
뒷사람이 그대로 따를 테니까

어스름이 내린 마곡천 징검다리를 말없이 건너는 스님들이 보였다. 뒷모습을 따라 징검다리를 건너니 물소리가 다시 귓가를 맴돌았다. 비우라 비우라 강요하지 않고 조용히 품어주는 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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