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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8년 (음)10월 초하루 법문(주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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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12-09 13:49 조회2,9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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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다보면 여러 가지 일을 행하고 여러 가지 일을 당합니다.

이러한 삶 속에서 내 일이 잘 되고 있는가 하는 점검의 시간도 필요합니다.

<중략>

우리 속담에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떨어져 단단한 돌덩어리를 뚫듯이,

우리가 끊임없이 정진하며 노력을 하면 어떠한 커다란 일도 능히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이와 같이 끊임없는 정진 기도를 하는 마음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승려생활을 하면서 보면 꾸준히 하시는 분들은 드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게으름을 피우며 나태한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략>

끊임없이 정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신과 자아가 투쟁을 해야 하고, 현재 처한 환경에도 적응해야 하는 등 그렇게 녹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모든 일이 빨리 이뤄지길 바라지요.

<중략>

우리는 무슨 일을 벌려 놓으면 뭐든지 ‘빨리, 빨리’.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생기고, 마음의 졸갑증이 일어나지 않나 싶습니다.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게 우리들의 경제원칙입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 우리 불자들은 이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는 최소의 노력이 아니라 최대의 노력을 다해서 최대의 효과를 얻어내야 합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린다는 것은 잘못하면 요행을 바라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걱정되는 게 있습니다.

기도 접수를 하고 백일기도를 한다면 ‘스님들이 해 주겠지’, ‘우리가 안 가도 스님들이 다 알아서 기도를 해 주겠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아무리 스님들이 잔칫상을 벌여 놓아도 여러분이 와서 먹지 아니하면 그 잔칫상은 무용지물입니다.

여러분이 함께 기도 정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졌을 때 올바른 정진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략>

쉽게 이루어지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태화산을 보십시오.

미미한 먼지들이 쌓이고 미미한 모래들이 모여 태화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앞에 흐르는 냇물도 한 방울 한 방울의 물이 모여 냇가를 이루고,

그 냇가의 물이 또 모여 강을 이루고, 강의 물이 모여 커다란 대양을 만듭니다.

한 방울의 물이 댓돌을 뚫듯이

그 한 방울 한 방울, 미세한 모래들이 모여 커다란 바다와 산을 만들듯이 여러분들이 끊임없이 기도하는 마음들이 모여 여러분들의 지혜를 싹 틔울 수 있게 해 줍니다.

수행하고 정진할 때 흔히들 ‘행주좌와어묵동정 하면서 기도를 하라’고 얘기를 합니다.

먹을 때나 잘 때나 쉴 때나 걸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항상 기도하는 마음을 늦추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꼭 절에 와서만 기도를 하느냐’ 하는 그러한 모습을 비추고 살지 않으냐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는 시행착오를 합니다.

하지만 하나 하나의 물방물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루듯이 그러한 기도 정진의 힘, 에너지가 모여서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번뇌를 내려앉힐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들이 매월 법회에 참석하고, 기도에 임하는 것이 그러한 미진한 마음을 털어버리고, 부처님의 참 진리를 얻어서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게으름이란 모든 허물의 바탕이다. 집에 있는 이가 게으르면 의식이 부족하고 사업이 쇠퇴할 것이요, 출가한 이가 게으르면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좋은 일은 모두가 정진에 의하여 일어나나니 집에 있는 이가 정진하면 의식이 풍족해지고 사업이 번창할 것이요, 출가한 이가 정진하면 법을 모두 성취하여 마침내는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라니 모두가 정진에 의해 이루어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드시는 그 순간까지도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제자들에게 모든 것은 변해 가나니 게으름 없이 힘써 정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정진, 정진하지만 그 정진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꾸준히 해 나간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진리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의 눈이 청정한 자는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가시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자등명 법등명’입니다.

스스로 내 등불에 나 자신을 비춰보고 그것이 부족했을 때 부처님의 진리의 등불에 비추어서 간주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의 등불에 나를 비추어 볼 수 있는 사람, 진리의 등불을 비추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나의 잘못을, 나의 업을 남한테 돌리기보다는 내 스스로가 나를 반성하고 나를 비추어보는 그런 마음가짐이 있을 때 진정한 불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혜가 부족하더라도 영원히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들은 많은 얘기 중 아마 이 얘기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부처님 제자 중에서 가장 부족한 사람이 누구예요?

부처님 당시에 가장 우둔한 판타카, 판타카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기원정사를 거닐고 계시는데 한 구석에서 큰 울음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부처님께서 다가가서 “너는 왜 울고 있느냐. 판타카야. 너는 왜 이렇게 슬피 울고 있느냐”하고 말씀하시니 판타카는 “부처님, 저는 사형들이 가르쳐 주는 게송을 아무리 외울려고 해도 외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형들이 너는 희망이 없으니 돌아가라. 다시 돌아가서 네 생활을 하라고 해서 울고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부처님께서 판타카의 손을 잡고 “걱정하지 마라” 하면서 “나를 따라 오라”고 하시면서 조용한 곳으로 가서 판타카의 울음을 멈추게 하고 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빗자루 하나를 주면서 “판타카야, ‘너는 오늘부터 쓸고 닦아라’ 이 구절만 생각하고 생활하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판타카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빗자루를 들 때마다 생각을 합니다.

‘쓸고 닦아라’.

그런데 ‘쓸고’를 외우면 ‘닦아라’를 잊어 버리고, ‘닦아라’를 외우면 ‘쓸고’를 잊어 버립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그래서 판타카는 ‘쓸고 닦아라’를 끊임없이 외우게 됩니다.

한동안 고생을 하면서 간신히 외웠습니다.

“쓸고 닦아라”

과연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쓸고 닦아라’고 했을까.

판타카가 오랫동안 ‘쓸고 닦아라’는 화두를 가지고 공부하다가 ‘쓸고는 지혜의 빗자루로, 닦아라는 번뇌를 털어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잡된 생각, 번뇌, 망상을 지혜의 비로써 깨끗하게 쓸어버려라.’ 그 뜻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판타카가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께 달려 갑니다.

“부처님, 제가 이제 ‘쓸고 닦아라’라는 뜻을 알았나이다” 하니 부처님께서 “판타카야, ‘무엇을 쓸고 닦아라’고 했는지 아느냐” 하니 판타카는 “지혜의 비로써 번뇌의 뜰을 닦아라라는 얘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재선재로다.”

“착하고 착하도다. 네 말이 맞다. 번뇌의 티끌을 없애는 것이다” 하고 일러주십니다.

단어 두 개조차도 외우지 못하는 판타카가 끊임없는 정진으로 아라한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중략>

여러분들은 이 판타카보다 휠씬 더 지혜롭고 총명하고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는 이루지 못할까. 왜 못 이룰까요?

바로 게으름입니다.

게으름과 방일함 때문에, 나태한 마음으로 인해 일을 성취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니면 내일이면 되겠지. 내일 아니면 모레 되겠지. 오늘 아닌 미래는 없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오늘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그러나 오늘 방일하고 나태하고 게으른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내일을 기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또 많이 들어봤지요.

수처작주라.

내가 처한 곳에서 주인공으로서 내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할머니는 할머니로서, 엄마는 엄마로서, 며느리는 며느리로서, 딸은 딸로서, 스님은 스님으로서 과연 그 자리에서 내가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가.

거기에 따라 미래가 달라지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처님 앞에 와서 절을 많이 한다고 해서 부처님께서 소원을 들어 주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오시는 사찰은 자기의 마음의 때와 번뇌를 벗어버리고 내가 실천하겠다는 다짐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법회를 보는 것도 이와 같이 ‘내가 나태하게 살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것을 부처님 전에 고백하고, 정진하는 시간을 갖기 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불자로서 내 삶을 명예롭게 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중략>

얼마 전 자랑하듯이 “기도를 하고 오는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보살님께 이러한 말을 건넸습니다.

“‘타들어 가는 촛불이 광명을 주는데, 이 촛불이 과연 광명을 주려고 자신을 태우고 있느냐’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봐라.”

입으로 기도했다고 하지 말고 몸으로 기도했다고 하지 말고 타들어 가는 촛불처럼 광명을 줄 수 있는, 우주를 깨우쳐 줄 수 있는 그러한 부처님 제자가 될 수 있도록 정진을 해야 합니다.

오고가며 "오늘 무슨 기도를 했노라, 오늘 몇 천배를 했노라."

숙제의 절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이 추운 날 생활을 하면서 움츠리지 말고 타들어 가는 촛불처럼 미혹에 빠진 이웃들에게 부처님의 진리를 전할 수 있는 그러한 불자가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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