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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4년 부처님 오신날 봉축법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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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0-05-21 21:30 조회4,4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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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4년 부처님 오신날 봉축법어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우리가 이 날을 기쁨과 환희로 맞이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너무나도 큰 것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법구경 불타품”에서는

“행복하여라 깨달은 이의 태어나심이여

행복하여라 깨달은 이의 가르침이여

행복하여라 그 가르침대로 살려는 이들이여

행복하여라 삼보를 진정한 피난처로 삼는 이들이여“

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날이 기쁜 것은 바로 우리에게 행복을 주셨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출요경에서는 똥치는 니이다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누구도 상대하지 않는 불가촉천민이었습니다. 어느 날 니이다이는 인분을 나르기 위해 좁은 길을 빠져나가다 부처님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른 몸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몸을 트는 바람에 인분 통이 떨어지면서 인분이 사방으로 튀어 자기는 물론 부처님께도 튀고 말았습니다. 니이다이는 울면서 부처님께 사죄하고 도망치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니이다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 때문에 왔는데 어디로 가려는가”

“저 같은 천한 자가 감히 부처님을 가까이 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하려고 하였을 뿐이옵니다. 부처님은 알아주소서. 저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을 뿐 아니라 친척도 별로 없나이다. 부처님께서는 무슨 분부가 계시기에 자비스럽게도 이런 천한 자와 더불어 이야기하시나이까?”

“내가 영원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행을 닦으면서 도를 이루려고 한 것은 바로 죄에서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서다.”

그리고 부처님은 니이다이에게 손을 내밀며 ‘일어나거라, 니이다이야 함께 강물로 씻으러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니이다이는 두려움에 떨며‘저같이 천한 자가 어찌 부처님과 함께 가겠습니까?’하고 거절하자 부처님은 니이다이를 일으켜 세우며 ‘염려하지 말라 나의 법은 더러움을 씻어주는 깨끗한 물과 같고 바다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욕을 마친 후 부처님은 니이다이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부처님은 빈부귀천 그 어느 누구도 차별하거나 홀대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 때문에 일부러 왔다’고 하시는 부처님의 말씀이 들리십니까? 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시는 그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진리의 강으로 이끄시어 더러운 때를 씻어주시는 그 따스한 손길을 느끼십니까?

부처님은 언제나 우리의 곁에서 자비의 손길을 내밀고 계십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혜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이견이 가득합니다. 찬성과 반대로 갈라지고 이념이 서로 달라 미워하고 싸우고 괴로워합니다. 어제까지는 맞던 말이 오늘이 되면 틀리다고 합니다. 온갖 주의와 주장, 가치관과 세계관이 충돌하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이런 세상에 부처님은 진리의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진리는 우주에 충만하여 변함이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옳고 그름, 찬성과 반대를 떠나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치신 진리는 사리분별을 떠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며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것이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것이며 또한 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성격을 가진 것입니다.

상응부경전에서 이르기를

“진리는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나이다. 즉 이 진리는 현실적으로 증험되는 성질의 것이며, 때를 거르지 않고 과보가 있는 성질의 것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며, 니르바나에 잘 인도하는 성질의 것이며 또 지혜 있는 이가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다.”라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삿된 견해가 판치는 세상을 바르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지혜는 널리 중생을 비추는 것이 마치 태양과 같다고 하여 지혜의 태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참생명 참자유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부처님은 태어나실 때 이미 “하늘 위나 하늘 아래서나 모든 존재는 다 존귀하다.”고 외치셨습니다. 불교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불교에서는 어떤 생명도 하찮은 생명은 없습니다. 내 생명이 소중한 만큼 다른 생명도 소중합니다. 어떤 존재도 다른 생명을 좌우할 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들은 스스로 부처님과 같은 생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부처의 성품 즉 ‘불성’이라고 합니다. 모든 생명은 바로 이 찬란한 불성의 주인이기에 스스로가 주인공인 것입니다.

인간 뿐 만 아니라 자연계의 모든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구 개발하고 마구 파헤쳐 생태계가 파괴되면 그 자연은 인간에게 재앙을 줄 것임에 틀림없으며 그러한 현상은 지금 우리 스스로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되고자 하는 부처님과 같은 생명, 곧 “참생명”은 제도적 구속은 물론 생사의 윤회까지 벗어나 자유로워진 생명입니다. 부처님은 속박되어있는 생명을 자유로운 참생명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부처님과 같은 생명의 주인입니다.

부처님은 구원입니다.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역경에 처했을 때,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위중한 병이나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극한의 고통과 공포를 경험하게 됩니다. 생로병사의 이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거쳐야 하는 것이지만 막상 병이 들고 죽음을 눈앞에 두거나 혹은 죽은 뒤에 지옥고의 고통을 받을까 두려운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렇지만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참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실감하지 못한다고 해도 또한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곁에는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돌봐주는 이 없고 곤궁하고 재앙을 만난 사람들, 병들고 약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이 세상에 나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위중한 병에 험난한 상황에 빠졌을 때도 부처님의 손길이 우리의 곁을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욱더 중요한 구원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 구원은 바로 “깨달음”입니다. 우리 스스로 진리를 깨달아 진리와 하나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궁극의 구원입니다. 진리는 언제 어디서든 변하지 않는 것이기에 깨닫는 것은 우주에 이미 충만해 있는 진리를 알아차리는 것이며, 곧 참자유의 참생명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군가에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이미 원만하게 구원 받았음을 아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사람도 구원해줄 존재도 없는 완전한 생명, 즉 참생명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 길을 가르쳐주셨으니 이보다 더한 구원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처님은 바른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잡아함경에 이르기를

“제자들아, 그대들은 두극단에 달려가서는 안 되나니, 그 둘이란 무엇인가. 온갖 욕망에 깊이 집착함은 어리석고 추하다. 범부의 소행이어서 성스럽지 못하며 또 무익하니라. 또 스스로 고행을 일삼음은 오직 괴로움뿐이며, 역시 성스럽지 못하고 무익하니라. 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깨달았으니 그것은 눈을 뜨게 하고 지혜를 생기게 하며, 마음의 번뇌가 끊어져 고요하고 편안한 적정과 참다운 지혜를 터득한 증지와 평등한 깨달음인 등각과 완전한 깨달음인 열반을 돕느니라.”

세상을 살다보면 양극단을 달리는 생각이나 행동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기도 합니다.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이런 극단을 떠난 ‘바른길’을 찾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을 ‘중도’라고 합니다. 중도라고 하면 양극단의 한 가운데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간이지 중도가 아닙니다. 불교에서 중도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떠나 옳은 입장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중도를 정도 즉 바른길이라고 합니다.

그 바른길에는 8가지가 있습니다. 바른 견해, 바른 의도,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직업, 바른 노력,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집중이 그것입니다.

특히 바른 견해는 8가지를 완성하는데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바르게 보는 눈이 있어야 바른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가 힘겹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고통이 가득한 고해라고 합니다. 약육강식이라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항상 경쟁과 다툼 속에 살아갑니다. 다른 생명을 함부로 취하고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원한과 갈등이 생겨나고 크고 작은 싸움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행복은 찾을 수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행복의 세상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서로 의지해서 살고 있는 실상을 밝혀주신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자연과 자연이 의지해서 살아가는 실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실상을 알게 되면 모두가 고마운 존재요 모두가 귀중한 생명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다툼과 원한이 사라지고 평화로운 세상이 찾아옵니다. 서로 의지하고 감싸 안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 행복의 문이 열립니다.

부처님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 서로가 서로를 돕고 존중하고 감사하며 사는 세상을 열어주셨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행복을 느끼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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